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, 청주에서 나왔습니다.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《직지심체요절》입니다.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, 이 책은 한 나라의 자랑을 넘어 인류의 기록이 되었습니다.
직지프린팅은 그 도시, 청주에 있습니다. 학교·유치원 졸업앨범을 찍어내는 제작 공장이죠. 여기서는 영업 이야기 대신, 인쇄의 본고장에서 앨범을 만든다는 게 직지에 어떤 의미인지를 담백하게 적어봅니다.
청주에서 시작된 활자, 그리고 직지
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입니다.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8년 앞섰고, 흥덕사라는 절에서 찍어낸 그 책을 줄여서 '직지'라 부릅니다.
직지프린팅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왔습니다.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. 600여 년 전의 활자와 오늘의 인쇄 공장 사이에 직접적인 계보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. 그건 사실이 아니고, 사실이 아닌 걸 브랜드로 삼고 싶지도 않거든요. 다만 인쇄가 처음 자리 잡은 도시에서 인쇄를 업으로 한다는 것. 그 자리의 무게는 조용히 새기고 있습니다.
전통은 내세우는 순간 가벼워진다
솔직히 말하면, 헤리티지는 마케팅 문구로 쓰기 좋은 소재입니다. '직지의 후예' 같은 말은 한 줄로 그럴듯해 보이죠. 하지만 그런 말을 앞세울수록, 정작 손에 쥔 앨범은 가벼워집니다.
전통이라는 단어는 과거를 자랑할 때가 아니라, 오늘 만든 물건이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때 의미가 생깁니다. 청주에서 앨범을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자랑이 아니라 일종의 책임입니다. 인쇄의 본고장이라는 이름값을, 말이 아니라 매일의 결과물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.
그래서 오늘의 청주에서, 어떻게 만드나
청주에서 졸업앨범을 만든다는 건 실제로 무엇이 다른가. 답은 위치가 아니라 공정에 있습니다.
직지프린팅은 학교·유치원 졸업앨범을 인쇄부터 제본, 후가공까지 한 공정 안에서 처리하는 제작 공장입니다. 여러 스튜디오에서 넘어온 원고를 받아, 수백에서 수천 권 단위로 찍어냅니다. 이때 중요한 건 첫 권과 마지막 권의 색이 같은가입니다. 한 권 잘 뽑는 건 누구나 합니다. 수천 권을 균일하게 뽑는 건 설비와 검수 체계가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고요.
성수기도 마찬가지입니다. 졸업식은 날짜가 고정입니다. 12월부터 2월 사이, 전국의 물량이 한꺼번에 몰립니다. 이 시기에 약속한 날짜를 지키는 것. 그게 본고장이라는 말보다 훨씬 무겁습니다.
공장 안의 풍경은 사실 단순합니다. 인쇄기가 일정한 가동음으로 종이를 밀어내고, 갓 찍힌 면에서는 잉크 냄새가 옅게 올라옵니다. 색을 맞추는 작업자는 펼침면을 들어 빛에 비춰 보며 잉크 농도를 봅니다. 이 반복이 수천 권 동안 흔들리지 않아야, 첫 권을 받은 학교와 마지막 권을 받은 학교가 같은 앨범을 손에 쥡니다. 본고장이라는 이름은 그 단조로운 반복 안에서만 지켜집니다.
헤리티지보다 오래 남는 것
직지심체요절이 600년 넘게 남은 이유는, 그 시대의 가장 정직한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.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를 제대로 찍어낸 결과가 남았습니다.
앨범도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. 졸업앨범은 한번 만들면 수십 년을 갑니다. 학생이 어른이 되고, 그 앨범을 다시 펼쳐볼 그날까지요. 그 긴 시간을 견디는 건 멋진 표지 문구가 아니라 변색되지 않는 잉크와 풀리지 않는 제본입니다.
청주에서, 인쇄의 본고장이라는 이름을 잇는 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. 오늘 만든 한 권을 제대로 만드는 것.